(3) 북한당국의 정책: 국민경제의 이중구조화 전략1)   


  시장에 대한 북한당국의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전반에 대한 북한당국의 정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북한의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의 경제정책에서 핵심요소의 하나는 국민경제에 대한 일종의 이중구조화 전략이다. 기본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이중구조이고, 한편으로는 특권경제(당경제, 군경제)와 일반경제(내각경제, 주민경제)의 이중구조이며, 또 한편으로는 군수공업을 포함한 중공업과, 경공업의 이중구조이다. 다만 이중경제구조는 개념적 차원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이중경제구조라 해도 두 부문이 분리되어 있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서로 얽혀 있으며, 더욱이 양자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상당 정도 존재한다. 특히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그러하다.


  북한은 1990년대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경제라는 범주가 사실상 실종되었다. 거시경제의 재생산구조, 순환구조는 파괴되면서 국민경제는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분절화․파편화되었다. 국민경제는 크게 보아 계획 부문과 시장 부문으로 분화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당경제, 군경제, 내각경제, 주민경제(비공식경제)2) 등 4개 부문으로 분화되었다.


  북한당국은 2000년대 들어와 이중경제구조를 공식제도의 틀로 편입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국민경제에 대한 이중구조 전략을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즉, 북한당국은 우선순위체계에 입각해서 자원배분을 재조정하되 국민경제 전체, 경제의 모든 부문을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기를 사실상 포기했다. 기본적으로 당경제, 군경제, 일부 내각경제는 국가가 책임을 지는 반면 주민경제와 일부 내각경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계획경제의 영역 내에 묶어두지만, 후자는 시장경제의 영역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재정이 절반으로 축소된 위기적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선택한 생존전략이다.


  재정수입의 격감에 대한 국가의 대응방식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든 부문에 대해 균등하게 예산을 감축․배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불균등하게 감축․배분하는 것이다. 북한이 택한 길은 후자였는데 북한당국은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이른바 우선순위체계에 입각해 자원배분시스템을 재편했다. 물론 이러한 우선순위체계는 경제위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핵심적인 산업 및 기업에 대해서는 국가의 계획경제 틀 속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계획경제의 틀을 뛰어넘어 직접적인 명령과 강제를 통해 확실하게 장악․관리하는 한편 여타의 산업 및 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로 국가가 손을 떼는 것이다. 이 경우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리․통제하는 산업 및 기업과, 국가가 방임하는 산업 및 기업을 분리한다. 전자는 군수산업, 중공업 부문 등 국가 기간산업, 일부 경공업이고 후자는 경공업 부문 등 주민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소비재 부문이라 할 수 있다3).


  시장경제의 영역은 얼핏 방임 혹은 자력갱생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 이후의 경제위기 속에서 중앙정부는 국민경제에 대한 장악력, 통제력을 상당 정도 상실했는데 이러한 현실을 공식적으로 추인했다. 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지방과 공장․농장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공식화한 것이다. 원자재와 자금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더라도 지방과 공장․농장이 자체적으로 종업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것이며, 시장경제적 질서에 의해 생존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국가는 이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는 당, 군, 내각의 기관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자력갱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앙정부는 무조건적으로 자력갱생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당, 군, 내각의 기관에 대해서든 지방과 공장․농장에 대해서든 대외무역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확대해주는 식으로 새로운 여건을 조성해 주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각급 경제주체들에 대해 대외무역이라는 공간을 열어주는 한편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식으로 체계를 재편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2002년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이러한 이중구조 전략의 공식화라는 성격을 지닌다. 7․1 조치 이전에도 이러한 이중구조는 형성되어 있기는 했으나 시장이 비공식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중구조 전략은 공식화된 것이 아니었다.


1) 이 절과 다음 절의 서술은 양문수, 『북한의 계획경제와 시장화 현상』(서울: 통일교육원, 2013), pp.80-82, 90-91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2) 여기서 말하는 주민경제란 국민경제와의 연관성이 거의 없는, 개별주민의 경제생활의 총체를 가리킨다.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국가 차원의 식량 배급제 및 생필품 공급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주민들은 식량 및 생필품 획득을 위해 개별적이고 독자적으로 시장을 통해 경제활동을 영위해야만 했는데 이를 통틀어 주민경제라 칭하고 있다.  

3) 큰 틀로 보아서는 이중구조전략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다중구조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국가가 직접 관리․통제하는 기업 및 산업 내에서도 국가의 자원(원자재, 자금) 배분 비중에 다소 차이가 발생한다. 예컨대 어떤 산업 및 기업에 대해서는 필요로 하는 자원을 국가가 100% 공급하지만 다른 산업 및 기업에 대해서는 50%, 또다른 산업 및 기업에 대해서는 20% 정도만 공급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산업 및 기업은 부족분을 시장경제 등을 통해 메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