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난의 행군 이전 시기
북한은 ‘국가가 인민들의 건강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의료봉사를 완전히 무료로 보장해주는 가장 선진적인 제도’라고 자신들의 보건의료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6)
보건의료 제도의 구축과정을 살펴보면 1946년 2월 출범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주요하게 추진할 ‘20개조 정강’을 발표 하면서 제15조에 노동자와 사무원들의 생명보험을 실시하며 노동자와 기업소의 보험제를 실시할 것과 제20조에 국가병원수를 확대하며 전염병을 근절하며 빈민들을 무료로 치료할 것 등의 보건의료 내용을 포함했다.
북한은 무상치료 대상을 확대하면서 북한 전역에 무의면(의사가 없는 면)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1950년 상반기에 무의면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밝히고 있다.7)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해방 이후 구축했던 보건의료 시설이 파괴되었고, 북한은 이러한 난관을 1953년 1월부터 전체 인민에게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해결해 나갔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방법으로 방안을 찾았고 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인민들에게 국가 혜택을 확대하면서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무상치료제를 전 인민에게 확대한 것이다.8)
북한은 1958년 개인의사들을 모두 국가 보건기관에 편입시키면서 사회주의 개조를 완료해 갔고 1960년에는 모든 리(里)단위에 진료소를 구축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60년 2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7차 회의를 통해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 실시를 채택했다.9)
1953년에 구축된 ‘전반적 무상치료제’가 1961년부터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로 그 보장 내용을 확대한 것이다.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는 시(市) 및 군(郡)인민병원과 리(里)진료소를 더욱 튼튼히 구축하고 보다 많은 의사들을 배치하면서 의사담당구역제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북한은 1980년 제6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인민보건법을 채택해 인민들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보건의료 혜택 보장을 법적으로 담보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10)